고객님의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여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집..-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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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연두와 초록이 조화를 이루는 5월이 쑤욱 올라왔네요..
3병동 중환자실에 계셨던 남영우어르신의 자식 남상훈입니다..
여든을 넘기시도록 병원생활이라고는 하루도 해보시지 않으셨던 아버님을, 2년전 발음이 어눌해지시기에 병원을 찾으니, 현대의학은 루게릭으로 진단을 했습니다..
군생활 기간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시골 고향에서 400년 선조들과 함께 하셨던 분을, 뜨거웠던 지난 7월에 고향을 등지게하고 집을 나서게 했습니다..
9월.. 수술을 혹독하게 마치고, 대학병원에서 34kg의 몸이 되신 아버지를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
아버님의 자의가 아닌.. 자식의 자의로..
자식이 잘나지 못하여 병원 침상에 뉘였습니다.. 왜 잘나지 못하였고.. 왜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였던가를, 이제서야 짚어보니 목이 메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요양원이라는 곳이 있다기에.. 저도 찾아보았습니다.. 시절이 좋아 인터넷으로 5군데를 출력한 후, 네번째 찾아간 곳.. 시지노인전문병원.. 그간 실버타운을 신문의 분양광고에서만 보아왔었는데.. 저는 이곳이 실버타운인줄 알았습니다..
어디 보다도 더.. 최상의 시설이라 독려하면서.. 집으로 모시겠다는 생각을 이기적으로 밀어내면서.. 아버지를 침상에 뉘였습니다..
쾌차하셔서 집으로 갑시다..라는 빛좋은 게살구로 포장하면서.. 힘내셔서 시골로 갑시다..라는 우물물로 숭늉을 떠왔노라면서..
기관지 절개.. 위루.. 장루.. 34kg..
9월을 보내고.. 10월이 되니 아버님께서 주차장을 걸어다니셨습니다..
그 어느날 아버님의 손가락 한 문장.. " 효라는 것은 없어 "..
한학과 신학을 겸하셨고.. 향교와 성균관을 출입하시며, 전교.전의.전인을 두루 거치시며, 평생을 유교와 공자님을 섬기신 분께서..
어느 가을날 아침 주차장 마당에서.. 휠체어에서 일어나시면서, 손가락으로 옷자락에 남긴 한 문장.. " 효라는 것은 없어 "..를 쓰시고는, 황급히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너가 아침.저녁으로 오는 것이 효가 아니라는 말씀이신지.. 효라는 것은 없으니, 너무 애쓰지 말라는 말씀이신지.. 너가 하는 것이 효가 아니니, 효인 척하지 말라는 말씀이신지..
그때는 당연한 말씀을 새삼스레 하신다 싶어서, 어찌하시는 말씀이신지 여쭈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저 역시 효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도리.. 자식의 도리도 아니고,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했기에.. 내 부모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도리..
너무나 까랑까랑하셔서.. 아무리 짧아도 5년은 끄떡없으시다고.. 길면 10년 이상을.. 누가 여쭈면 그리 답했었는데..
황망하여서 인지.. 냉정하여서 인지.. 삭막하여서 인지.. 무정하여서 인지.. 인정이 없어서 인지.. 효자가 아니라서 인지.. 아버님 장례식 때 울어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이 글을 쓰면서.. 아버님의 급박하셨던 순간과 아버님 사후에 처음으로 울어봅니다..
여태 살아오면서 오만하게도, 미련.후회 없이 살았는데.. 아쉬움이라는 것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요 ?..
잘나지 못하여 아버지를 그리 아쉬움으로 보냈는데.. 잘나지 못한 이자식이 어머니 생각에 정신이 퍼뜩 또렷해집니다만..
아버지 생에 마지막으로 생활하시면서 거쳐하셨던 곳.. 시지노인전문병원.. 유니버시아드로 365..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아버지의 집이었습니다..
못난 자식을 둔 저희 아버지는 시노원이 있었기에.. 시노원에 혈육의 자식보다 더 훌륭한 세상의 자식들이 있었기에.. 지난 8개월간의 거처를 그렇게 틀수가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당신들은 사람이 삶을 살게해주는 일을 하시는 참사람들 입니다..
저 또한, 또다른 참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제 의식이 있는 한.. 귀원과 귀하들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15.05.05 |